산행일자 : 2023.12.03.(일)
산행코스 : 팥재~도봉사~헬기장~정상~도봉사~팥재(원점회귀)
산행거리 : 3.4km
산행시간 : 1시간30분
※ 블야 100+명산
유학산은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읍~가산면에 위치한 839m의 산이다. 칠곡군 내 낙동강 유역 부터 중앙고속도로 다부IC 부근까지 산맥이 이어지고 있고 가산~팔공산 자락과도 연결되어 있다. 정상에서 대구광역시 방향의 경관이나 구미시와 금오산 전경이 뛰어나다.
한국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다부동 전투가 벌어진 지역이기도 하다. 다부동 전투가 낙동강 전투와 연결되어 있는터라 산 곳곳에 흔적이 남아 있는데 최근까지도 탄피나 유골이 발견 되기도 했다.
다부동 전투
북한군은 국군과 유엔군을 추격해 1950년 8월 1일 진주∼김천∼점촌∼안동∼영덕을 연결하는 선까지 진출했다. 북한군 전선사령부는 수안보에, 제1군단과 제2군단은 김천과 안동에 각각 사령부를 두고 있었고, 당시는 7월 20일 김일성이 수안보까지 내려와 “8월 15일까지는 반드시 부산을 점령하라.”고 독촉했던 직후였다. 따라서 북한군 전선사령부는 매우 초조한 상태였다.
7월 말 국군과 유엔군의 낙동강방어선을 공격하게 된 북한군의 작전개념은 다음과 같다. 첫째, 경부도로를 따라 대구를 공격, 둘째, 동해안 도로를 따라 포항∼경주 방향으로 공격, 셋째, 창녕 서쪽의 낙동강 돌출부를 공격해 유엔군의 병참선 차단, 넷째, 남해안을 따라 마산∼부산 방향으로의 공격 등이었다. 이는 4개의 공격축선에서의 동시 공격으로 낙동강방어선을 돌파하고 부산을 점령한다는 것이었다.
1950년 8월 초 낙동강방어선을 공격하는 북한군은 가용부대의 절반에 해당하는 5개 사단을 대구 북방에 배치했다. 따라서 8월 공방전의 승패는 대구 북방의 전투결과에 따라 결정될 정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반면 그 지역의 아군 방어병력은 총 3개 사단(국군 제1·제6사단, 미 제1기병사단) 뿐이었으며, 그나마 인접 사단들이 서로 연결되지 못한 상태였다. 적의 주접근로를 담당한 국군 제1사단은 낙동리 부근으로 도하하는 적을 몇 차례 격퇴시켰으나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제6사단은 북한군과 공방전을 반복하다가 결국 용기동에서 위천으로 물러났다. 왜관일대의 미 제1기병사단은 역습을 전개해 낙동강을 도하하려는 적과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 무렵인 8월 11일 육군본부는 국군의 방어선을 303고지(작오산, 왜관 북쪽)∼다부동∼군위∼보현산을 잇는 선으로 축소 조정했다. 이에 따라 국군 제1사단과 제6사단은 다부동∼군위 선에서 대구를 방어하게 되었다. 그러한 가운데 미 극동공군사령부는 8월 16일 낙동강변에 이른바 융단폭격을 단행했다. 이는 대구정면이 위태롭다고 판단한 미 제8군사령부가 낙동강 대안의 적 주력부대를 제압하기 위해 유엔군사령부에 건의해 실시된 폭격이었다. 융단폭격의 성과는 명백하게 확인되지 않았으나, 북한군 지휘관들에게 대단히 큰 심리적 충격을 준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월 18일 가산에 침투한 적이 사격한 박격포탄이 대구역에 떨어지자 대구의 위기가 고조되었다. 그 충격으로 정부가 부산으로 이동하고 피난령이 하달되는 등 대구일대가 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 후 미 제1기병사단 정면의 적은 강을 건너오는 동안 많은 손실을 입고 접촉을 단절함으로써 소강상태가 유지되었고, 국군 제6사단 지역에서도 유엔 전폭기의 지원을 받아 이를 격퇴함으로써 적의 대구 공격은 국군 제1사단 방어지역인 다부동 축선에 집중되었다.
국군 제1사단은 유학산∼다부동∼가산선에서 북한군 3개 사단의 집요한 공격을 끝까지 저지 격퇴함으로써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또한 다부동 방어전투를 승리하게 된 배경에는 미 제8군의 적절한 예비대 투입도 큰 기여를 했다. 마침내 8월 20일 적은 더 이상 다부동 전선을 돌파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유학산 정면을 공격했던 제15사단을 영천 방면으로 전환했고, 이로써 8월의 다부동 위기는 해소되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인용)
팥재에서 도봉사로 가며
도봉사까지 콘크리트차도 오름길을 올라야 한다
도봉사는 하산할때 보기로 하고
도봉사 좌측 산길로 계단길을 오르니
아미산을 오르고 온터라 발걸음이 무겁다
칠곡의 백운산~매봉 조망
조망대가 있어 가보니
시원한 조망이 펼쳐진다
다시 가파른 산길을 올라
멀리 신석산~영암산, 금오산이 조망된다
오름길엔 거친 돌길이 많더라
헬기장
헬기장에서 바라본 구미시 그리고 금오산 전경
전방에 유학산 동생뻘인 천생산과 그 너머 구미 산업단지가 조망된다
유학산 정상인 유학정, 학이 노니는 산이라는데 학들은 어디에...
정상에서 다부리로 이어지는 유학산 능선과 멀리 가산과 팔공산이 조망된다
저 능선에서 6.25때 국군 1사단(사단장 백선엽 장군)과 인민군(중공군)이 고지를 뺏고 뺏기는 공방을 걸치며 수 많은 사상자를 낸 끝에 국군이 인민군을 물리치고 고지를 지켜내 대구시와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할 수 있었다.
유학산에서 산화한 호국영령들에게 조국수호를 해준 감사와 함께 명복을 빌어본다
가산과 팔공산을 좀더 당겨보고
정상에서 조망되는천생산과 구미산업단지 그 너머 베틀산과 냉산이 우뚝 서 있다
신석산~영암산~금오산과 낙동강이 가로지르는 구미시 전경
황악산~매봉과 그 너머 대구광역시
저멀리 중앙에 비슬산이 아스라히 보인다
정상에서 다부리 방면으로 하산하다가
도봉사로 내려간다
좌측 봉우리가 유학산 정상
군데군데 조망대가 있어 쉬어가기 좋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걸어내리면
도봉사에 닿는다
시간 관계상 도봉사는 멀리서만 바라보고
도봉사에서 팥재로 내려서니 땅거미가 지고 있다
유학산은 6.25의 상처가 깊게 베인 산이라 남다른 의미가 있는 산이다.
생각 같아서는 6.25 호국영령들을 기리며 정상에서 다부동까지 길게 걸어보고 싶은 산인데 산행시간 때문에 짧은 산행을 할 수 밖에 없음에 아쉬운 마음이 든다.
어려운 전쟁상황에도 불구하고 유학산을 끝까지 사수한 국군1사단 장병들과 백선엽 장군에게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되새겨 본 산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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